[계란 한 판] 스물, 이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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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


서른이 됐다.

나름 열심히, 성실하게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내 20대를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하고, 쉽게 타협하고,

딱 그만큼 쉬웠던 수 많은 자기합리화의 결과로 내팽개친 수많은 잔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다.


그 중 어떤것들은 한 때 꿈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것이며,

그 중 어떤것들은 한 때 노력, 열정따위의 이름으로 부르던 것들이다.

사실 이런 거창하고 감상적인 단어들을 갖다붙이기엔 그렇게 진중하게 살아온 삶은 아니다.

그냥 계란 한 판 채운 기념으로 계란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계란들은 썩어있을지도,

어떤 계란들은 후라이가 되거나 삶아져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줬을지도,

어떤 계란들은 처음 그곳에 담겼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이 놓여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냥 잠깐 멈춰서 되돌아보기로 했다.

초침을 멈출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 그냥 그 똑딱거리는 소리를 무시한채 말이다.


01. 스물, 이과, 디자인


스물이되던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보다는 해방감에 취했다.

더 정확히는 ‘수능이 끝나던 순간부터’라고 표현해야 맞겠다.

해방감을 논하기엔 딱히 구속되어있던 10대는 아니었지만,

해방감을 논하기엔 딱히 훌륭했던 성적표는 아니었지만,

그냥 대한민국 수험생이면 수능이 끝나는 순간 해방감을 느끼는건 똑같으니까, 나도 그랬던 것 뿐이다.

그게 상쾌한 해방감이든, 찝찝한 해방감이든 말이다.


지망 학과는 있었지만 하고싶은것 따위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데,

‘지망’의 사전적 의미가 ‘뜻하여 바라는 것’이라는걸, 그땐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생각이란걸 잘 하고 살지 않던 시기다.


그렇다고 하고싶은게 아예 없었던건 아니고,

그냥 주구장창 게임만 했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나면 2008년이 끝날때 까지는 아무생각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게 나름의 ‘지망’이었다.

오해할 수 있는데, 물론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게임은 충분히 했었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싶다”

그냥 딱 그런 마인드였던 것 같다.

“이미 게임은 충분히 즐겼지만 더 격렬하게 충분히 즐기고싶다”


어쨌든 그때 지망학과로 넣었던 곳은 신소재공학과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긴건 나는 정말 화학을 극혐했던 화포자였다.

신소재공학과가 뭐하는 학과인지도 모르고,

‘신소재공학’이라는 이름이 뭔가 간지나서 그냥 지원한거다.

새삼 학과 이름도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아마 ‘재료공학과’였으면 나같이 생각없는 멍청이들은 지원하지 않았을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신소재공학보다는 재료공학이 좀 더 실용적인 학과명일까?

말이 잠깐 샜는데, 재료공학도들을 비하하는 발언은절대 아니다.

당시의 내가 그만큼 목표도, 생각도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말하고싶었다.


그러다가 더 간지나는 이름의 학과를 찾았는데, 이름하여 ‘디자인학과’ 였다.

디자인학과 중에서도 미디어 디자인, 시각 디자인 이라는 이름이 멋있어보여서, 관련된 몇 개 학과를 지원했다.

문득 든 생각인데, 난 이 모든것을 믿고 지켜봐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한다.


어쨌든 가,나군에 신소재공학과, 다군에 4년제 디자인학과 하나를 넣고,

나머지는 2,3년제 대학에 개설된 디자인학과에 닥치는대로 넣었다.

물론 난 실기는 전혀 해보지 않았기때문에 ‘비실기전형’이 있는 학교로만 골라 넣었다.

2,3년제 대학들은 대부분 전형기간 내에 합격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가나다군에 넣었던 학교는 가군인가 나군에 넣은 신소재공학과 딱 한군데만 추합으로 붙은 상태였다.


그러다 입학을 한달 앞둔 2월 초순쯤,

나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법학과를 간다고 재수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다.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무슨 법률 관련 드라마를 보고 꽂혀서 변호사가 된다고 그랬던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솔직히 이 글을 적어내려가면서 글 쓰기 시작한걸 조금 후회하고있다.

지금도 뭐 제대로 사는건진 모르겠다만,

아니 x발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막살았다고?

하지만 전부 팩트다…


어쨌든 그러던 와중에, 다군에 넣었던 디자인 학과에서 추가합격 전화가 왔다.

신입생 OT를 불과 1주일쯤 앞둔 2월 중순에, 말그대로 ‘문닫고’ 들어간거다.

“거기 마지막에 들어오는 학생 문닫고 들어오세요~”

뭐 이런 느낌?

나는 그것을 ‘8차 추가합격’이라고 말하고다닌다.

그 당시 학교측에서 공식적으로 ‘8차 추가합격’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내가 확인했던 마지막 공식 추합이 7차였던 관계로, 그냥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아, 물론 재수준비는 추합 전화를 받자마자 공부하던 ‘법과 사회’ 과목의 책을 덮는것을 마지막으로 때려쳤다.


잠시

솔직히 그냥 개인 기록용으로 간단히 쓰고 마무리하려했는데,

나도 내가 이정도로 버라이어티한 인생을 살았왔는지 몰랐다.

20대를 돌아보기는 커녕,

불과 수능이 끝나고 약 3달 남짓한 기간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 뿐인데, 지친다;

그래서 이 글은 몇 개로 나누어서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편의상 이 시리즈(?)의 대제목을 “계란 한 판” 으로 정하고,

각 글의 제목은 나이를 앞에 붙이고, 해당 나이의 주요 키워드를 대충 붙였다.

대충 생각하는 후속 타이틀(가제)은

2부 - 스물하나, 디지털아트

3부 - 스물셋, 학위라는껍데기1 (학부)

4부 - 스물넷, 학위라는껍데기2 (대학원)

4부 - 스물여섯, 방황, 음악, 국토대장정

5부 - 스물일곱, 학원, 취업

6부 - 스물여덟, 전문연구요원

7부 - 스물아홉, 개발자

정도로 나누어야 할 것 같다.

이 중에 몇 개는 글의 길이와 내용에따라 더 쪼개지거나 합쳐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본다고 이따위 글을 이렇게 장황하게 적는지 모르겠지만,

제 3자가 보는걸 떠나서 당장 1년후의 내가 봤을때 분명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딩장이

코딩장이

-장이: [접사]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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