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중소기업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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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개발자


나는 중소기업 개발자다.

다시 말하면, 중소기업에 다닌다.


처음에는 누가 회사에 대해 물어보면,

“병특으로 들어와서 대기업은 갈 수 없었다.”

“병특을 하면서 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오게됐다.”

등의 ‘병특 핑계’ 사족을 달았지만,

이제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한다.

나는 중소기업 개발자다.


사실 병특으로도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 유수의 중견 이상급 기업에 취업 가능하다.

까놓고 말해서,

난 그런곳을 가기에는 실력도 부족했고 열정도 없었기에 중소기업조차 어렵게 취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중소기업 개발자가 된 것 뿐이다.


사실 IT업종을 떠나서, 많은 회사원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다닐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대기업 vs 중소기업 종사자 비율”을 굳이 통계청에서 가져오기는 귀찮다.

그러니 부디,

“아닌뒈? 내 주변엔 다 대기업인데?”

“아닌뒈? 내 주변엔 다 공무원, 중견기업인데?”

등의 반박은 잠시 넣어두면 감사하겠다.


‘IT’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카카오, 넥슨, NC,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쿠팡, 위메프 등등의 유수한 기업들이 있는데,

사실 우아한형제들같은 성공한 스타트업도 기업형태만 보면 ‘중소기업’으로 등록되어있다.

근데 이런 중소기업말고,

나는 정말 회사이름을 말하면 대부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런 중소기업에 다닌다.


중소기업 개발자의 꿈


내가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자랑(?)은 이쯤하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개발자들의 ‘꿈’은 뭘까?

내 주변 사람들을 기준으로 공통적인 몇 가지가 있는데,

나열해보자면,

  1. 위에서 언급한 중견급 이상 IT기업으로 이직하는 것

  2. 스타트업을 통해 자신만의 성공한 창업을 이루어내는 것

  3. 개발이고 나발이고 로또나 당첨돼서 평생 일하지 않고 편히 사는 것

다시, 여기서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이렇다.

바로 ‘중소기업을 벗어나는 것’ 이다.

지금 내가 있는곳을 벗어나는것이 ‘꿈’이라니, 너무 슬프지 않은가?


물론 훌륭한 복지를 가지고있는 중소기업도 많고,

개발자를 대우할 줄 아는 분위기와, 합리적인 개발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중소기업도 많다.

그리고 그 안에서 충분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즐겁게 개발 라이프를 영위하는 개발자도 충분히 많다.


하지만 톡까놓고

나는 좀 더 일반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는 내 생각을 적는 카테고리이고,

스스로의 생각 안에서조차 눈치보거나 위선떨고싶진 않다.


글의 서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다닌다고 했었다.

이를 앞서 말했던 “중소기업 개발자들의 꿈”과 조합해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 IT종사자들 대부분의 꿈은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고자하는 꿈이 뭐가 나쁜가?

톡까놓고 말하기로 했으니,

나도 그런 사람중 하나이기도하니까.


중소기업 개발자의 고민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중 하나도 이직시 사용할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물론 다른 개발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 제일 크긴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자기개발에 힘쓰는 개발자라는 것 또한 어필하고 싶었다.

이력서에 블로그 링크를 추가하며, “그러니까 나를 좀 더 이쁘게 봐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기때문에 처음에는 ‘고민하는 개발자인 척’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대기업에 어울리는 좋은 개발자인 척’ 하기 위해서

다른 개발자들이 추천해주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던 장인정신이나 클린코드에 대한 책을 읽었다.

다른 개발자들이 포스팅 해놓은 좋은 글들을 읽었다.

왜? 내 포스팅에 써먹으려고.


근데 이게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고,

고민하는척 하기위해 책을 읽고 포스팅을 하다보니 진짜 고민을 하게된거다.


공부하는 척 하려면 책이나 하나 펴놓으면 되지만,

고민하는척 하려면 실제로 책을 읽어야 했으니까.

어느 순간 정말로 좋은 코드를 짜고싶어졌다.

어느 순간 정말로 좋은 개발자가 되고싶어졌다.


중소기업 이야기 하다가 왜 갑자기 자기자랑 하냐고?

어느순간 내가 하는 공부들, 내가 고민하며 짜는 한 줄 한 줄의 코드가,

단지 “중소기업을 벗어나기위해서” 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엿같아졌다.

표현이 좀 괴팍한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으니까 그렇게 쓴 것 뿐이다.


이런 표현이 좀 낯간지럽고 웃기긴 하지만,

어느 순간 ‘이직을 위한 고민들’ 은 ‘좋은 개발자가 되기위한 고민들’ 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중소기업에 출근하던 길’은 ‘개발하러 가는길’로 바뀌었다.

내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이 느껴졌던 ‘대기업 다니는 지인들’은 그냥 ‘개발자 동료’가 되었고,

나또한 거리낌없이 스터디그룹에 참여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발전할 수 있게되었다.

나의 꿈은 더 이상 중소기업을 벗어나는것이 아니다.

그냥 좋은 개발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직하지 말라고?


아니.

난 실력을 키워 좋은 기업에가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자 노력하는것에 대해 폄훼하려는게 아니다.

나 또한 그것을 위해 공부했다고 이미 밝혔고, 단지 그 과정에서 나는 좀 공허함을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감상적인 생각따위 할 시간 없이,

정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이외에 아무생각이 들지 않을정도로,

개발자들을 심하게 착취하고 굴리는 중소기업이 많다는것도 알고있다.


다만 똑같은 양의 고민과 노력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사고방식에 따라 삶의 질이나 목적성이 현저히 개선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기에,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자기개발을 끊임없이 해라.

그건 당연한거다.

하지만 단순히 이직이나 높은 연봉을 위해서가 아닌,

개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대기업 다니는 개발자가 개인 블로그나 대학 강단에서 연설하면 와닿지 않겠지만,

나 또한 대부분이 그렇듯 평범한 ‘중소기업 개발자’일 뿐이고,

고민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즐거운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기업 명함과 높은 연봉을 바라는건 자연스럽다.

근데 어차피 그거랑은 상관 없다.

높은 연봉을 위한 전제조건은 뛰어난 실력이고,

뛰어난 실력의 전제조건은 올바른 방향성과 꾸준한 노력이다.

그리고 꾸준한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지치지 않게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것이 바로 즐기는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좆소기업 개발자의 정신승리 ㅋㅋ”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부정하진 않겠다.

나는 그 ‘정신승리’를 통해서 실제로 많은것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너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더 좋은 근무환경을 찾아 떠날것이다.

다만 연봉이나 네임밸류를 떠나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이드는 쪽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게 또다른 중소기업이든, 직원수 3명의 소규모 스타트업이든, 억대연봉의 대기업이든 상관 없다.


어쨌든 난 지금도 충분히 즐겁지만,

지금 현재 상황에 100% 만족한다는 등의 위선을 떨고싶진 않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중소기업 개발자들이여, 이직할 생각만 하지 말고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자!”

따위의 꼰대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게 아니니까.


마치며


내가 개발자로서 진로에 대해 한참 고민할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적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직까진 없었고,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되기로했다.


이 글은 그냥 내 의식의 흐름을 대강 휘갈겨놓은것이고, 딱히 결론은 없다.

그리고 사실 중소기업 개발자 뿐 아니라, 모든 개발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었다.

내 주변엔 매일같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치는 개발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단지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인 경우를 많이 보았다.


마른 우물에서 도망치기 위해 벽을 타고 위쪽으로 기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마른 우물에 다시 물을 가득 채우기위해 고민하는 것 또한 가치가 있지않을까?

물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그 우물을 빠져나가거나, 우물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벗어나기 위해 도착한 우물 밖에서, 개구리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우물 밖에서는 과연 또다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도망을 위한 고민은 또다른 도망을 위한 고민을 낳을 뿐이지 않을까?


더 맑은 하늘을 맞이하는 것과 더 나은 하루를 맞이하는 것은 사실 별개의 문제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것과 더 나은 개발자가 되는 것이 별개의 문제인것처럼.


처음 이중 for문으로 구구단을 찍어내고 쾌감을 느꼈던 본인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제로 짠 프로그램이 제대로 돌아갈때쯤 동이 트는것을 발견하며 실소를 띄었던 날의 열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로인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개발자, 즐거운 개발자가 되기위한 고민을 하는데에 소중한 시간을 투자했으면 좋겠다.

행복한 사람은 어디서든 행복할 것이고, 불행한 사람은 어디서든 불행할 것이다.




코딩장이

코딩장이

-장이: [접사]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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